일왕(일본 천황) 은 백제인의 후손입니다 일본 고대사 연구 한일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 고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 이야기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うえだ まさあき))

생년월일: 1927년 4월 29일~ 2016년 3월 13일

 

 

일본의 역사학자, 일본 역사학계의 거두, 가인(歌人)

일본 고대사 연구 한일 고대사 연구의 일인자라 불리는 권위자

일본 교토 대학교 명예교수(京都大学名誉教授)

일본 오사카 여자 대학교 명예교수(大阪女子大学名誉教授)

일본 교토 오바타 신사 궁사(小幡神社宮司)

 

https://ja.wikipedia.org/wiki/%E4%B8%8A%E7%94%B0%E6%AD%A3%E6%98%AD

어느 일본 노 교수의 용기

 

누가 한 말일까요?

일왕은 백제인의 후손입니다

 

주인공은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 교수입니다

(2016년 3월 13일 별세 향년 88세)

 

그는 일본의 건국 신화가 단군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고대 백제인을 통해 일본의 왕권이 퍼졌다는 왕조 이동설을 주장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왕의 백제 후손설을 고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우에다 교수와 만난 적이 있는 아키히토 일왕(2001년) 도

간무 천황(50대 일왕) 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깊은 연을 느낀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칠지도 앞면의 마지막에 전시후세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명하는 형태의 문장입니다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보낸 칼 칠지도와 관련된 논쟁에서는

문헌상 서법이 하행 문서 형식이므로 백제 왕실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이지

헌상 한게 아니라고 분석한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4~ 7세기쯤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래인) 이 일본에 큰 역할을 했다

귀화인이라는 표현은 일본 중심적이고 차별적이다

 

특히 한일 교류가 일본에 많은 영향을 준 점을 강조했는데요

 

저서(귀화인 1965) 를 통해 고대 일본에 온 한반도인을 지칭하던

귀화인이라는 표현 대신 도래인이라는 표현 제안 학계에 정착시킴

 

오늘날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생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한국 침략 등은 용서할 수 없는 불행한 역사다

어두운 그림자의 역사다 하지만 6~ 7세기 한반도에서 건너와

일본 아스카 문화를 이끈 역할은 빛의 역사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민간 교류의 확대를 통해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 강제 병합 100년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왜곡시킨

과거 역사 교육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매국노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우익 단체로부터 국적이라면서 교토대를 떠나라는 협박장을

네 번이나 받았다

 

2009년에는 한일 관계를 증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 훈장 숭례장을 받았습니다.

 

역사는 사실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고 이념에 바탕을 둬선 안된다.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는 것을 반대하며)

 

일명 우에다 사학의 지평을 열었던

한일 고대사의 1인자 국가주의 사관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는

한평생을 교류사 연구에 바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갖 어용 지식인들이 판을 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자신만의 학문의 지평을 넓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게 역사학계에서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어떤 불의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평생을 자신만의 신념대로 살다간 우에다 사학의 창시자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 한일 고대사 분야에서 이분이 남긴 업적이 나날이 계승되어

언젠가 그 꽃을 활짝 피는 날이 오기만을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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