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가장 미스테리한 경력을 가졌던 일본 제국 중의원 친일 정치 깡패 박춘금(朴春琴)

 

박춘금(朴春琴)

 

1891년 4월 17일 태어나 1973년 3월 31일 사망한 인물입니다

밀양 박씨이고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서 주로 활동한 곳은 밀양이라고 합니다

이시대 많은 조선인들 처럼 박춘금도 일본군 병영에서 일하며 어깨 너머로 배운 일본어가

계기가 돼서 일본까지 건너가게 됐고 일본에서 고용살이, 자전거 직공, 탄광 갱부, 토목 노무자 

등 막노동 육체노동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고야에서 조선 인삼 판매업에 종사하면서 재일 교포 폭력 조직에서

점점 두각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이시기에 어찌 그리 인연이 닿게 된건지는 모르겠으나

야쿠자의 원조 흑룡회 계열의 폭력배 거두 흑룡회의 실력자 도야마 미츠루(頭山滿) 와 

본격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합니다

 

도야마 미츠루를 만난게 박춘금의 인생 터닝 포인트 였는지 이후 박춘금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마냥 엄청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도야마 미츠루 빽을 토대로 정계로도 본격 진출을 하였고

1920년 도쿄에서 이기동이랑 상애회((相愛會) 상구회(相救會) 에서 이름을 바꿈) 를 결성 이 조직을

조선 일본 전역으로 확장 시키며 이때부터 정치 깡패로 까지 그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되죠

 

다이쇼 12년 관동 대지진(関東大震災) 때도 시체 처리 및 조선인들 색출에 앞장 섰으며  

민족 지도자 동아일보 사주 인촌 김성수, 송진후 테러에 노조 파업 다 때려부수고 

노동쟁의, 소각쟁의, 반일운동 집회등 조금이라도 일본에 해가 되는 활동이 보인다 싶으면 

회원들과 함께 출동해 가만히 두지 않는 등 어찌 보면 진짜 온갖 더러운 일 위험한일 힘든일은 

다 도맡아서 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자 그래서 박춘금 이 사람 친일 행적으로 가득찬 인생사는 잘 들었고 도대체 미스테리한 경력이 뭘

말하는건지 잘 모르겠다구요?

 

한가지 참 재밌고 의문스러우며 미스테리한 사실은 정치 깡패에 막장 오브 막장 헬 그 자체 였던

친일파 정치 깡패 원조 박춘금이가 창씨 개명도 하지 않고 일본의 심장부 도쿄 도쿄 제 4구에서 

일본 제국 의원을 무려 3선이나 해먹었다는 겁니다 협박을 받고 그만둬라 하고 많은 위협을

받으면서 까지 그것도 일본인들과 경쟁 까지 해서 말이죠 ㅎㅎ

 

아무리 기반이 탄탄 했다지만 명색이 박춘금이는 이당시 아무리 좋게 본다 해도 외지인 

조선인이였을 뿐이었을텐데 말입니다 

 

일본 제국의회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던 최초이자 최후의 조선인 박춘금

참고로 덧붙이자면 박춘금이가 일본 제국 중의원을 하면서 조선인에게 참정권을 줄 의사 없냐

조선에 일본군 사단을 증설할 의사가 없는가 이런 말들을 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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