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양 근대 의학의 아버지 오가타 코안(緒方洪庵 (おがた こうあん))

 

오가타 코안

(1810년 8월 13일 ~ 1863년 7월 25일))

 

일본의 무사이자 의사 난학자 이다. 데키주쿠(適塾) 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오가타 코안이 키워낸 인재들이

훗날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등장한 메이지 유신 시기 일본의 근대화를 떠받치는 중추가 된다.

 

무사 가문임에도 물구하고 몸이 허약해 무인의 길보다는 의사 난학자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서양 의술을

배우고 데키쥬쿠 라는 학원을 연다. 데키주쿠는 당시 사설 학원으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으며 후에는

제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강의실이 좁아져서 사람이 들어갈때가 없어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강의실로 썻다고 한다.

 

1850년에 아시모리번(足守藩) 의 요청으로 종두법을 보급하기 위한 '足守除痘館' 을 설치, 牛痘種痘法 을 널리

펼치고 중간에 종두법 대상 아이가 죽어서 우종두법으로 전향은 했지만 나중에 막부로부터 공인받게 된다. 이

업적으로 인해 오늘날 오가타 코안은 우리나라의 지석영 선생과 같이 일본에 종두법을 널리 보급한 의료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1만엔의 모델 일본 근대 교육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조선업 방적 활자 등에서 대 활약한 오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일본에 처음으로 위생(衛生) 의 개념을 도입 보급한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齋)

일본 군대의 기초를 닦은 오무라 마스지로(大村 益次郎)

일본 민간 구호단체의 선구자 일본 적십자의 기틀을 닦은 다카마츠 료운(高松 凌雲)

 

이름만 들어도 기라성 같이 쟁쟁한 일본 근대사에서 한 업적씩 했던 인물들이 모두 오가타 코안이 데키주쿠에서

길러낸 제자들이다. 1862년(분큐 2년) 에도 막부에서 당시 오사카에 있던 오가타 코안을 '奥医師兼西洋医学所頭取'

라는 벼슬 자리를 내리며 에도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오가타 코안은 이듬해인 1863년 각혈하고 질식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밖에 오가타 코안 은 일본 최초의 병리학서 ' 病学通論 ' 를 저술 콜레라에 맞서 코로리치준(虎狼痢治準) 을

편저하였다고 한다. 오가타 코안은 인자하고 사교성이 뛰어나 상인, 아이, 무사, 한학자 등 신분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귀었으며 온화한 인품으로 제자들에게 절대로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그의 제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오가타 코안을 회상하며 선생께선 항상 웃으시며 말씀하시는데

화를 낼때도 웃으시니 그게 더 무서웠다고 회상했을 정도이다.

 

 

 

 

 

 

 

 

http://www.tbs.co.jp/jin-final/

 

네덜란드 의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서양 의학소의 대표

 

반도 대한민국에서도 MBC에서 리메이크해서 이범수, 송승헌, 박민영, 동방신기의 멤버였다가 이제는

JYJ 멤버가 된 김재중(영웅재중) 등이 출연한 드라마 닥터진의 원작으로

2009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진(JIN-仁-)1 (원작 만화 타임슬립 닥터 JIN - 무라카미 모토카) 에서

근엄하고 인자하며 엄청 위엄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 오가타 코안

 

타케다 데츠야가 진짜 온화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인품이 느껴지는 실제 오카타 코안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묘사한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시기면 반도는 안동 김씨가 몰락하고 흥선 대원군

이하응과 조선 26대 왕 이명복 고종이 등장하던 시기 인데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반도 대한민국이 삼국 시대때 문물을 전해줄때만 하더라도 아직 반 미개인 야만인 상태였던 일본은

이시기인 19세기 말 격동의 한세기 근대화를 빠르게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벌써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게 되니까요

 

그런데 그에 비하면 조선은 그놈의 성리학 씹선비 유교 소중화 사상에 빠져서

과학 상업 기술을 천시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미련하게 바보 같이 양반 선비

놀음이나 하고 있었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픈 역사인것 같네요. 

 

이웃 일본은 하나로 재빨리 뭉쳐서 화폐 통일 도량형 통일 근대적 신분제 제정

근대적 제도 정비 근대적 신식 해군 양성 종두법 배포 근대적 위생 제정 등 부국강병을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근대화를 추진하고있는데 똑같은 시기 조선은 진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19세인

이때도 세도정치 당파싸움에 공자왈 맹자왈만 해댔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선은 이미 16세기 부터 인구, 경제력 등지에서 일본에 서서히 뒤지기

시작했었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일본과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이때부터 조선의 20세기 초

비참한 몰락은 이미 예견되 있었던것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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