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 시키는데 이바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살펴 봅시다

 

글을 들어가기전

 

 

필자는 문재인이 문씨는 일국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내로남불 사이코패스가 일국의 지도자 소리 듣는다는게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불가능한 일인것이겠지요

 

고 김대중 고 노무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이 두사람은 오늘날 대한민국 온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기득권 주류 세력 무능한 노답 꼴통들 대한민국 최악의 세대 386 이제는 586이 된 좌익 전대협 

주사파 민주 팔이들 무개념 꼴통 페미니스트들 문빠 대깨문들의 세력 확산에 지대한 영양분을 제공 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좋게 보지 않는 점들이 더 많으나

 

국익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신들의 지지 세력 좌익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러 좋은 일들도 많이 했기에 이 두사람은 그래도 대한민국 대통령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는것을 

필자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밝힙니다

 

오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 수교를 통해 처음 물꼬를 튼후 일본과의 한일 관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관련 업적을 가볍게 살펴봐도록 하겠습니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와 함께

2차 세계 대전의 3대 전범 A급 전범

일본 124대 덴노 히로히토 쇼와 덴노(昭和天皇)

 

일본 제국의 다이쇼 쇼와 시절 35년간 식민지 상태 였던

조선인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군주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런 히로히토 일본 덴노가 사망하자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 신분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저

히로히토 덴노의 분향소를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조문하며 파격적인 일본에 대한

오픈 마인드를 보여줬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출처: 한국 경제

 

일제 시대때 자신을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을 평생동안 잊지 못했을 만큼 참된 진정한 스승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다 늙어서 젊은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이였던 걸까요?

 

목포상고 재학 시절 담임 선생이었던 무쿠모토 이사부로(本伊三郎)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센세 도요타 데스(선생님 도요타 입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옛 일본인 은사를

각별히 모셨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입니다 ㅎㅎ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은

도요타 다이쥬(豊田大中) 입니다 풍전대중이죠

 

 

 

 

 

 

 

일본과의 진정한 21세기 새로운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그 전까지는 한국 안에서만큼은 일본 군주를 일왕이라고 호칭 했던 것을

이제는 한국 안에서도 천황 폐하라는 호칭 공식 첫 사용이라는 결단과

종군 위안부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일본 정부에게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통큰 결단의 정치를 선보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말 한일 관계 발전에 있어 크나큰 한획을 그었다고 밖에 평가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이런 정치적 결단을

내렸었다면 어찌 됐을지는 다들 아시죠?ㅎㅎ

 

 

 

 

 

 

 

한국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줬다고

비판도 듣고 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그어버리고 일본 상선 나포에 감금까지

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밀어 붙였던 이승만 라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었던 한일 어업 협정 

과거 구시대적인 일본과의 어업 협정에서 벗어나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미래 지향적인

한일 신 어업협정(신 한일 어업협정) 

 

그렇지요 상대방과 협상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대로만 하려면 그게

되겠습니까 가장 좋은 협상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양보와 화해 타협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대남 도발로 벌어진

제2 연평 해전으로 6명의 아까운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이 산화 했으나

 

그럼에도 국제 관계와 신뢰를 더 중요시하다 여겼는지

일본과의 관계 중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해 그 다음날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 경기 참석 직접 일본까지 가서

일본 125대 덴노 아키히토 헤이세이 덴노(平成天皇) 와의 우정을

전세계에 선보인 DJ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크흐 한일 월드컵 결승전 브라질 독일전 이때 필자도 진짜 직접 가서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답니다

 

덧붙이자면 아키히토 덴노는 이후 고령을 이유로 2016년 8월 8일 오후 3시 공식적으로

생전 퇴위를 발표 하였고 2019년 4월 30일 정식으로 퇴위를 해서 현재는 아키히토 상황(明仁上皇) 이 

되었으며 지금 일본은 126대 덴노 나루히토 레이와 덴노(令和天皇) 시대입니다

 

 

 

 

http://www.kdjhall.org/board/index.html?id=board06

 

일각에서 김대중 친일파 친일파 도요타 다이쥬 친일 김대중 등으로 문제 삼아 비난을 할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의 화합과 진정한 소통 교류 협력을 위해 

몸소 저렇게 노력을 많이 했었던 전라도의 정치인 전라도의 영원한 슨상님

작은 거인 김대중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에서도 찾아볼수 있는

목포상고 재학 시절 일본 군복을 착용하고 일본도를 들고 있는

김대중 그의 모습에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당찬 기백이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일제 시대에 당시 평범한 조선인은 구경도 못해봤을

고급 시계 고급 만년필을 소년 김대중이 가지고 있는걸로 보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학창 시절 모습이 눈 앞에서 아련히 스쳐 지나가는듯 합니다

 

 

좋은 일본 문화 받아들이자

김대중 아태 재단 이사장

 

김대중 대통령 자신감 갖고 일본 문화 수용 하라는 뜻 밝혀

 

 

1990년대 암흑 천지 같았던 대한민국 대중 문화계에

큰 뜻을 가지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오늘날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 콘텐츠를 즐길수 있도록

그 터전과 기틀을 닦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물꼬를 틀고

경제적으로만 군사적으로만 수많은 기술 지원과 자금 지원 원조를 받던 일본과의 한일 관계를

문화적으로도 한걸음 더 다가설수 있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쌓은 그의 이 업적을 다들

잊지 마십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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