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 vs 대만 6가지 비교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めいじじだい ))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 たいしょうじだい ))

쇼와 시대(昭和時代 ( しょうわじだい ))

 

그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대 일본 제국(大日本帝国 ( だいにっぽんていこく / だいにほんていこく ))

 

 

그리고 그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대한민국) 과 대만(중화 민국)

 

조선: 1910년 8월 29일~ 1945년 8월 15일

대만: 1895년 4월 17일~ 1945년 10월 25일

 

자 그러면 둘다 오랜 세월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 vs 대만 비교점 6가지 사항을 한번

알아보자

 

 

1. 대만은 원래 청나라의 영토였으나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청나라와 일본의 

청일 전쟁(淸日戰爭) 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条約 ( しものせきじょうやく ))

을 통해 일본에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대만 주민은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만 민주국을 수립하며 저항하지만 5개월만에 

일본에 격파 당해 지배 당한다

 

 

조선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1904년 한일의정서

1905년 을사조약, 가쓰라 태프트 밀약등을 거치며 일본의 내정간섭을 받고 국권이 사실상 거의 넘어간 

상태였으며 1910년 한일 합병(한일 합방, 경술 국치, 한일 병합) 조약으로 완전히 일본령이 되어 

종지부를 찍는다.

 

 

2. 대만은 1919년까지는 군인(무관) 출신 총독이 임명되었다. 그뒤로 1936년까지는 민간인(문관) 총독이 

임명 되었다가 전선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1936년부터 다시 무관 출신이 총독이 되었다. 문관 총독이 기용된 

탓인지 유화적인 통치로 대만 본성인들은 친일 성향을 넓게 띄었다.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타파니 사건, 우서 사건같은 항일투쟁이 있었으나 조선의 항일투쟁에 

비하면 저항이 적은 편이었다. 참고로 우서 사건(霧社事件) 같은 경우는 대만(타이완) 원주민의 한 부족인 

시디크(세디크) 족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 항전의 시작(Seediq Bale, 시디크발레(세디크발레)) 추천

 

 

조선은 초대부터 끝까지 무관 출신 총독이 임명되었다.  

3.1 만세 운동 여파로 유화 통치를 위해 문관 출신 총독을 임명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일본 육군의 반대가 있었기에 해군 출신인 사이토 마코토를 총독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궁중 석차(의전서열 같은 것) 로 조선 총독은 6위 대만 총독은 11위 였기에 

지위 차이가 어느 정도 있었다.

 

3. 대만 총독부 건물은 지금도 중화민국 총통부 관저로 사용 중이다.

참고로 현재의 대만(타이완) 총통은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이라는

제 14대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 Tsai Ing wen) 총통이라고 한다

 

조선 총독부 건물은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이 접수해 중앙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청사로 사용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엔 1970년까지 정부청사로 사용되다가 1986년엔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지시로 1995년 철거되어 완전히 사라진다.

 

4. 조선, 대만은 둘 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면서 공업은 일본에 종속되었다. 대만은 사탕수수 같은 상품 작물을 

주로 재배했기에 이윤이 좋았고 공업 쪽은 경공업이 주류였다. 이런 수익을 기반으로 대만 총독부는 초기에 

재정 자립에 성공했기에 사회 기반 투자가 비교적 잘된 편이었다.

 

 

조선은 일본이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면서 쌀농사에 주력하였지만 나중엔 쌀 가격이 폭락하며 

조선 쌀 수출이 일본 농가에 타격을 주자 1934년에 중단되었다. 조선에는 주로 군수공장이 지어져 

공업력 측면에선 대만보다 나은 편이었다. 조선 총독부는 일제 통치 말기까지 재정난에 시달려 

일본 본국의 자금에 의존했고 사회 기반 투자도 비교적 못한 편이었다.

 

5. 일제시대엔 일본 각지에 국립대인 제국대학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대만엔 대북 제국 대학(국립 타이완 대학), 조선엔 경성 제국 대학이 설립되었다. 

대만의 대북 제국 대학은 현 국립 대만 대학으로 일제 시대때 개교한 제국대학 시기를 

공식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래서 대만대 사이트에 들어가면 일본인 대학 총장까지 

모두 소개되어 있다.

 

조선의 경성 제국 대학은 해방 후 1946년 미군정의 지시로 폐교된 뒤 그 시설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섰다. 서울대는 여러 학교가 통합되며 만들어진 것이라 경성 제국 대학과의 연결성은 없다.

 

 

6. 해방 이후 대만은 본래 조국인 중화민국의 영토로 회복되었다. 이후 본토에선 

국민당- 공산당 간의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는데 국민당이 패전하여 1949년 대만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때 대만에 들어온 대륙 출신 한족이 외성인 원래 대만에 살던 한족이 본성인으로 

나뉘게 된다. 

 

외성인은 대만 북부 지역에 살면서 보수 정당인 국민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 대만 본성인은 원래 

본토의 통치를 싫어했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중국과는 독립적인 성향을 보이게 됐다. 

이들은 대만 남부 지역에 살면서 진보 정당인 민주진보당 민진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

 

 

해방 이후 조선은 남한은 미군정, 북한은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분리되었다. 

1945년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 하면서 한반도까지 밀고 내려오자 미국은 한반도를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자고 제안했고 소련은 한반도보다 동유럽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미군정 조선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성향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소련군정 조선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성향의 북한 체제가 만들어져 분단국가가 되었다.

 

미나토자키 사나(湊崎 紗夏, Minatozaki Sana), 히라이 모모(平井 桃, Hirai Momo)

묘이 미나(名井 南, Myōi Mina), 저우 쯔위(周子瑜 Zhōu Zǐyú)

트와이스 미사모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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