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스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개념 축구 선수 혼다 게이스케(혼다 케이스케) 그의 모든것을 알아보자

 

21세기 현재 국제화 시대 지구촌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인간이 지금까지 생각해서 만들어낸

스포츠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축구(Soccer) 여러분은 이 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다들 어떤 추억들을 가지고 계시는가? 그리고 축구(Soccer) 좋아하시는가?

 

아마 필자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면 여러분의 성별과 연령대 취향에 따라 다들 다양한

축구에 대한 추억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같은 경우는 남성이다

보니 초 중 고 대학교 때 그리고 군대에서 정말 지겹도록 축구를 많이 했었고 좋아했으며 월드컵을 비롯

유명한 축구 경기가 있을때마다 생방 LIVE 로 꼭 챙겨 보기도 했던 축구에 얽힌 추억이 있으며 한때 친구

들 지인들과 함께 FIFA ONLINE1, FIFA ONLINE2, 위닝 일레븐(World Soccer Winning Eleven) 에 미쳐 

살았던 시절도 있었던것이 필자이다.

 

그래서 평소 축구에 이렇게 관심이 있던것이 필자였던 만큼 늘 항상 머릿속 한편에서 일본 축구 일본 국가

대표팀에 대한 글을 한번 필자의 블로그에 올려서 여러분에게 소개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것이 필자였다.

그러던 마침내 오늘 필자에게 조금 시간이 있어서 일본(스시국) 의 개념 축구 선수 일본 축구의 리더 일본 축구

의 에이스 일본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혼다 케이스케(혼다 게이스케 ほんだけいすけ, 本田圭佑, Honda Keisuke) 

 

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혼다 케이스케 를 제대로 알아보기전에 혼다 케이스케 가

누구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수 있으니 그의 프로필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름: 혼다 케이스케

출생: 1986년 6월 13일

신체: 182cm,76kg

소속팀: PFC CSKA 모스크바 [MF]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й футбольный клуб ЦСКА Москва)

현재: AC 밀란(A.C. Milan)

데뷔: 2005년 나고야 그램퍼스8 입단

학력: 세이료 고등학교

 

이게 일본 축구 국가 대표팀 혼다 케이스케의 간단한 프로필이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고 한일전을 여러번 봤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혼다 케이스케 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계실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혼다 케이스케 를 잘모르

는사람들 은 원숭이 닮은 싸가지 없는 새끼, 이적설로 세계 일주하는 병신 밥 맛 떨어지게 하는 쪽바리 새끼 이 정

도로만 그를 알고 있을것이다.

 

어쩌면 이런 반응이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한것일수도 있다. 혼다 케이스케 가 필자가 이 글에서 그의 프로필을 

소개할때 넣은 사진만 봐도 다들 아시겠지만 외모가 정말 원숭이를 많이 닮았다. 그리고 2011년 8월10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 ほっかいどう )) 삿포로 돔(札幌ドーム, さっぽろドーム, Sapporo Dome) 에서 있었던 우리

나라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일본 축구 국가 대표팀한테 3대0으로 완패한 삿포로 대참사때 혼다 케이스케가 

가가와 신지와 함께 골도 넣고 했으니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당연히 욕이 나올 만한 일을 혼다 케이스케 가 

하긴 했다.

 

거기다 혼다 케이스케의 이적설은 뭐 심심할때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나오는 것이니 말할것도 없을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흔히 이렇게 알고 있는 일본 축구 국가 대표팀 혼다 케이스케 의 본 모습은 이게 전부

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사실 혼다 케이스케(혼다 게이스케 ほんだけいすけ, 本田圭佑, Honda Keisuke) 는 어렸을때부터 축구 선수로써는

정말 큰 약점이 있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선수였다. 축구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평발의 소유자가 혼다 케이

스케였던것

 

이렇게 축구 선수에게는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래도 축구를 하고 싶었던

것이 혼다 케이스케 그의 간절한 마음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의 약점인 평발

때문에 좋은 팀은 쉽게 갈수가 없었고 결국 혼다 케이스케 그가 할수 없이 선택한것은 오사카의 프로팀 축구 아카데

미가 아니라 그냥 별 볼일 없는 일본의 축구 무명팀이었다.

 

그는 이런 별 볼일 없는 무명팀에 입단해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축구 선수로써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것을 택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의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이 당시 코치는 혼다 케이스케 를 보고 머저리 넌 볼보이나해 라는

많은 질책과 꾸중을 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찌 어찌 해서 혼다 케이스케 는 소속팀을 감바 오사카(ガンバ大阪 간바 오사카 Gamba Osaka) 주니어로

소속팀을 옮기게 되었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때가 혼다 케이스케 의 나이 10살이었고 이

당시 그의 집은 도쿄(Tokyo 東京) 였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혼다 케이스케 는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도쿄에서

오사카(Osaka , 大阪) 까지 왔다 갔다 해야 했던거...

 

하지만 포기를 몰랐던 근성의 소유자 혼다 케이스케는 이러한 패널티를 각오하고 감바 오사카 유소년팀 입단 테스

트를 받지만 어김없이 탈락 선고를 받고 만다.

 

축구 선수로써는 치명적인 약점 평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 할줄 모르는 혼다 케이스케 를 보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 당시 혼다 케이스케에게 온갖 악평과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멘탈 만큼은 甲(갑) 

이었던 혼다 케이스케 는 이걸 다 견뎌 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꿈 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서든 축구 선수로써의 길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이를 갈고

좀더 본격적으로 노력을 시작 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혼다 케이스케 를 데려

갈 고등학교 팀들은 하나도 없었고 결국 혼다 케이스케 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도 혼다

케이스케 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축구 동아리에서 축구 

실력을 꾸준히 키워나가고 항상 연습하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혼다 케이스케의 엄청난 끈기가 집대성 되서 탄생한게 30권에 다다르는 그만의 축구 일기라고 한다.

참고로 이 일기는 혼다 케이스케가 중학교 중학생 고등학교 고등학생 시절 실제로 본인이 모든것을 작성한 일기로

이 축구일기에는 자신의 목표, 비전, 축구 전술, 경기 내용뿐 아니라 자신이 하루에 먹은 식사의 식단과 영양소까

지 일일이 작성 되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건 혼다 케이스케 의 끈기와 집념 열의 각오의 클라스가 조금이라도 느

껴지시는가 여러분? ㄷㄷㄷ 아무튼 혼다 케이스케 그는 이렇게 축구 선수라는 자신 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진짜 피

말리는 엄청난 노력을 한다.

 

실제로 혼다 케이스케가 기록한 그의 축구 일기 이렇게 오랜 세월 집요할 정도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

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늘이 감동해서 그의 노력의 결실이 드디어 이루어진걸까? 오랜 세월 쩌리 아니면 별볼일

없는 선수 취급 받았던 혼다 케이스케는 고3 때부터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혼다 케이스케 가 팀을 이끌며 일본 유스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루어 냈고 일본 전국 고교 축구선수권 대회

의 4강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두게 된것이다. 참고로 혼다 케이스케가 팀원들과 함께 이루어낸 이 성적은 이당시

이시카와 현(石川県) 출신 고등학교의 최대 성적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었던 자신의 기량을 드디어 활짝 꽃 피우기 시작한 혼다 케이스케의 진가와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일본 J 리그(Jリーグ 일본 프로 축구 리그(日本プロサッカーリーグ)) 나고야 그램퍼스(나고야 구란파스)

는 그에게 입단 제의를 하게 되고 그렇게 혼다 케이스케는 일본 J리그 프로 리그 진출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오랜 세월 고난과 역경을 거쳤던 혼다 케이스케의 인생에 탄탄대로가 뚫리게 된다.

일본 U-20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고 소속팀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의 축구 히어로로 비상한 그는 이 기세를 몰아 2008년 1월 네덜란드

1부 리그팀인 vvv 벤로(VVV-Venlo) 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혼다 케이스케가 입단한 네덜란드 1부 리그팀 vvv 벤로(VVV-Venlo) 는 리그에서 약체 팀이었고

결국 4개월도 안되서 vvv 벤로는 2부 리그로 강등 하게 된다. 강등이 되면서 vvv 벤로를 이끌던 주축 선수들

은 모두 팀을 나가지만 멘탈이 甲 이었던 혼다 케이스케는 끝까지 팀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끝까지 남아 구단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비록 2부 리그였지만 이때 혼다 케이스케 는 16골

10 어시스트를 기록해 리그 MVP에 선정됐고 이런 그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그의 팀은 다시 1부 리그로 승격

을 하게 된다.

 

거기다 네덜란드 리그를 밟은지 1년만에 혼다 케이스케는 자신의 팀인 vvv 벤로에서 주장을 맡게 되었고 승격후

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때부터 혼다 케이스케 의 창조적인 플레이와 클럽에 대한

높은 그만의 충성도가 많은 유럽 클럽들에게 눈에 뜨이게 된다.

 

 

혼다 케이스케의 이러한 재능과 기여도를 알아본 수많은 유럽 클럽들중

PFC CSKA 모스크바(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й футбольный клуб ЦСКА Москва) 는 2009년 말경

7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제시하며 그를 영입하게 된다.

 

이때부터 혼다의 러시아 감옥과 이적설로 세계 일주가 시작된다. 뭐 어쨌든 PFC CSKA 모스크바로 이적한

혼다 케이스케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이곳에서도 팀 의 핵심이 된다. 그리하여 PFC CSKA 모스크바 [MF]

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멤버중에 핵심이 된다.

 

이렇게 혼다 케이스케 는 승승장구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2010 FIFA World Cup) 월드컵 최종 엔트리 까지

들게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나가게 됐지만 혼다 케이스케 의 주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인데도 불구하고 이때 당시 일본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 오카다 다케시(岡田 武史, おかだ たけし) 감독은 그를

한없이 부실한 일본의 스트라이커 진 대신 원톱으로 출장 시키는 전술을 선보이게 된다.

 

한마디로 혼다 케이스케 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에서 자신의 포지션에서 활동을 안하고 원톱으로 활동을 했다는

말 그런데 이런 조금 난감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혼다 케이스케 는 뛰어난 활약을 월드컵에서 펼쳤고 이때 우리나라

대한민국 처럼 일본도 운이 좋아서 이런 파격적인 모험을 일본은 하고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6강이라는 성적을

우리나라와 함께 이루어내지만 결국 16강전 에서 파라과이한테 승부차기로 안타깝게 지게 된다.

 

그리고 1년뒤인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كأس الأمم الآسيوية لكرة القدم 2011) 에서 혼다 케이스케는 최고의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아마 필자 생각에 대부분의 분들이 여기서 혼다 케이스케를 알게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우리나라 대한민국과의 4강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혼다 케이스케

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봤을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혼다 케이스케 에게 욕을 하기 시작한 초창기 시작 계기가 이때부터

이고 이때부터 은근히 우리 나라 사람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쪽바리들은 우리의 숙명의 라이

벌인데 갑자기 원숭이 닮은 새끼가 멋진 활약을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보여주니까 말이다.

 

거기다 이 경기는 당시 전 국민들을 들어다 놨다 한 경기 였었다. 이대로 지는가 싶더니 황재원의 동점골로 승부차기

까지 갔지만 결국 승부차기 3번다 헛발질로 처 날리고 진 경기가 이 경기 였기 때문 이때 치열한 혈전 끝에 우리나라를

꺾고 결승에 올라가게 된 일본은 결승에서도 혼다 케이스케의 활약을 앞세워 호주를 1:0으로 이기고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내기까지 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 나카모토 유토(Nagatomo Yuto 長友 佑都 ながとも ゆうと) 가 이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게 되는데 혼다 케이스케

는 이걸 보고 아쉽다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아마 자신의 생각에는 본인이 더 잘한것 같은데 본인도 빅 클럽 가고

싶은데 부러웠던 모양

 

어쨋든 혼다 케이스케는 이렇게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كأس الأمم الآسيوية لكرة القدم 2011) 베스트 일레븐에

들면서 자신의 실력을 만천하에 제대로 보여주게 된다.

 

존재감을 뚜렷하게 과시하는 혼다 케이스케 의 몸 값 참고로 이때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클럽(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MU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소속이었던 지느님 박지성의

이름도 보인다.

 

어쨌든 이렇게 좋은 경기력을 늘 보여주고 있던 혼다 케이스케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그것은

필자가 이 글 위에서도 이미 언급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흑역사 전설의 삿포로 대참사 그냥 쉽게 설명하자

면 37년만에 3:0 으로 일본한테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처참하게 발린 사건 이때

 

가가와 신지(카가와 신지 香川 真司 ( かがわ しんじ )) 가 2골

혼다 케이스케(혼다 게이스케 ほんだけいすけ, 本田圭佑, Honda Keisuke) 가 1골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이기게 됐는데 이 한골을 우리나라를 상대로 넣었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혼다 케이스케 는

이때부터는 진짜 제대로 틈만 나면 엄청 매번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놈이 되고 만다.. 저 원숭이 닮은 새끼 또 나댄다

저 새끼 좆도 못하는데 왜 깝치냐 씨발 원숭이 새끼 죽이고싶다 등등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혼다 케이스케 를

욕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의 온갖 욕설이 이때부터 진짜 제대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이때

혼다 케이스케가 자신의 멘탈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한번 이겼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보다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개념있는 말이지만 일본 극우들한테는 당연히 열받는 말 물론

혼다 케이스케는 자신의 이 인터뷰 때문에 일본 극우들한테도 엄청나게 까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때부터 호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그러던 와중 혼다 케이스케

관련 또 하나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한국 축구팬들의 가슴을 울리게 된다.

 

그 일화가 뭐냐면 북조선(北朝鮮) 김씨 왕국 북한(北韓) 북괴의 축구 선수 국가 대표였던 안영학의 결혼식에

그가 참석한것이다. 필자의 이 글을 보고 아니 남의 결혼식 참석이 이 새끼 멘탈이랑 뭔 상관인데 하고 여러분들

중 일부분들은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한가지 슬픈 일화가 전해진다.

 

안영학이 원래 자신의 결혼식에 자신의 팀 동료들을 모두 초대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팀원들이 다 무시를

하고 안영학을 쌩까게 된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본 안영학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아아.. 역시

혼다 케이스케도 내 결혼식에 안오겠지?

 

하지만 이때 혼다 케이스케 가 양복을 갖춰 입고 안영학의 결혼식에 등장을 했고 참고로 이때 혼다 케이스케는

안영학의 결혼식에 참석한 유일한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재일 한국인(在日韓國人, 일본어: 在日韓国人 ( ざいにちかんこくじん ) 자이니치 칸코쿠진)

재일 조선인(在日朝鮮人, 일본어: 在日朝鮮人 자이니치 조센진 ざいにちちょうせんじん) 4세

 

축구 선수인 리 다다나리(일본어: 이충성 李忠成 (りただなり )) 를 안되는 발음으로 이충성(李忠成) 으로 제대로

불러주는 유일한 선수가 혼다 케이스케 라고 한다. 거기에다가 2012 런던 올림픽(London Olympics) 에서 나온 박종

우의 독도 세레모니를 옹호해준것도 혼다 케이스케이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그정도 행동을 하는건 당연하다는듯이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인터뷰 하면서 혼다 케이스케가 박종우를 옹호하다가 또 한동안 일본 극우들의 먹잇감이 되서 엄청

나게 물어 뜯겼다는것도 누구도 부인 못하는 기정 사실 뭐 어쨌든 다시 축구얘기로 들어가자면

 

2013 피파 컨페더레이션스컵(2013 FIFA Confederations) 에서도 일본 대표로 뽑힌

혼다 케이스케는 가가와 신지(카가와 신지와 함께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게 된다.

2013 피파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이 제일 잘한 경기인 이탈리아전 하이라이트를 보자

 

처음 부폰(잔루이지 지지 부폰(Gianluigi "Gigi" Buffon)) 을 상대로 pk 차는 선수가 혼다 케이스케이다

 

2013 피파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혼다 케이스케는 이탈리아 세리에A 의 명문 팀

AC 밀란(A.C. Milan) 의 부회장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에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아드리아노

갈리아니(Adriano galliani) 는 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알베르토 자케로니에게 그에 대해서 문의를

하게 되고 자케로니가 중용하는 선수가 혼다 케이스케였던 만큼 자케로니(Alberto "Zac" Zaccheroni, Commendatore)

가 그에 대해서 좋게 말해준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이 말을 듣자 마자 아드리아노 갈리아니는 일사천리로 혼다 케이스케를 영입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닥치게 되었으니 PFC CSKA 모스크바가 혼다 케이스케를 통 놔주지를 않는 것이다. 이때

당시 혼다 케이스케의 계약은 고작 6개월 남은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여차저차 우여곡절끝에 AC 밀란이 데려오는가 싶더니 혼다 케이스케가 AC 밀란과 계약에 성공했다는 얘기

가 막돌고 이제 러시아 감옥 탈출하는건가 라고 많은사람들이 생각했지만 PFC CSKA 모스크바가 이적료 협상에서

또 병신짓을 해서 혼다를 잔류시켜 버릴려 하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2013년 12월, AC 밀란으로 혼다

케이스케가 이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현재 혼다 케이스케는 AC 밀란(A.C. Milan) 에서 활약하고 있는중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일본(스시국)

의 개념 축구 선수 혼다 케이스케에 대한 정보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다.

참고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국적을 초월해 늘 활약하는 모습을 항상 주위 깊게 관찰하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 이 혼다 케이스케이다. 2014년에도 그의 변함없는 활약을 바라며 이 글의 마지막은 일본 축구의 리더

일본 축구의 에이스 일본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혼다 케이스케의 사진으로 마무리 하겠다.

 

 

 

일본 로린이(어린이) 들과 놀아주고 있는 혼다 케이스케

 

멍뭉이(강아지, 개) 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혼다 케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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