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하와이 일본 오키나와(Okinawa, 沖繩島) 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일본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노래 하이사이 오지상(はいさいおじさん) 오키나와 어로

하이사이는 안녕하세요 그런즉 직역하자면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 노래는 가수가 어릴 때 옆집 아줌마가 전쟁 후유증으로 미쳐서 자기 딸 목 잘라서 요리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아저씨도 미쳤고 그 미친 아저씨와의 대화를 노래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1. 오키나와 소개

 

오키나와는 일본 규슈 남단으로부터 약 685㎞ 떨어진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57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키나와는 이 중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섬이다.

참고로 오키나와 현을 이루는 섬들을 류큐 열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키나와(Okinawa, 沖繩島) 의 바다 사진이다.

정말 예쁜 것 같다. 참고로 오키나와의 기온은 아열대 기후로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아주 따뜻한 날씨의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광지로 오늘날 정말 유명하다.

 

 

2. 오키나와의 역사

오키나와는 어떻게 시작되었던 것일까?

 

12세기경 오키나와 각 지역에서는 아지라는 호족이 생겨나게 된다.

그 후 얘들이 서로 세력을 다투다가 15세기 초에 통일되어 류큐 왕국이 세워지게 된다.

한반도의 불완전한 삼국 통일이 7세기 경에 있었던걸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참 늦은 편

 

그리고 위치적으로 볼 때 오키나와는 중개 무역이 발달되기 정말 쉬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류큐 왕국은 중개 무역(이 당시는 조공 무역) 으로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곧 위험이 닥치게 되니......

 

 

3. 오키나와 수탈의 역사

사쓰마 번의 침략(사쓰마 번은 현재의 가고시마 현)

 

쌀이랑 돈 내놔라 좋은 말로 할 때

 

이 당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とよとみひでよし)) 는 조선을 칠

계획을 세운다. 전쟁을 하려면 쌀과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 그래서 류큐 왕국에게 엄청난 양의

군량미와 전쟁 지원금을 요구한다.

 

패기 있게 이를 거절하는 류큐 왕국

 

이순신 장군의 활약 등으로 인해 그 후 일본은 조선과의 전쟁 임진왜란 정유재란 조일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게 된다

 

자 그럼 전쟁에 졌으니까 일본 입장에서는 이유를 다른 데에 돌려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에도 막부 밑으로 들어간 사쓰마 번은 류큐 왕국이 임진왜란 출병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걸 구실로 삼아 

자신들의 참혹한 실패도 만회할 겸 사쓰마 번의 군대를 이끌고 정복을 해버린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류큐 왕국을 멸망시키지는 않는다.

 

왜냐고?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와의 관계도 단절되고 무역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상황에서 명나라가

자신들의 조공국인 류큐를 침략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관계가 이때는 진짜 완전히 회복 불능일 정도로 끊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류큐 왕국이 중국의 조공 국가로 존재하면서 벌어들이는 부가적인 이득이 쉽게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막대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실상은 나라 자체를 완전히 개박살을 냈지만 눈속임하듯이 겉으로는 류큐를 여전히 독립국으로 보이도록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주인 모르게 얄금얄금 다른 애새끼를 괴롭힌 거나 마찬가지다 이 말

 

 

수탈의 연속


이 상황에서 제일 피해 받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그렇다. 류큐 백성들이다. 류큐 왕국이 존속되고 있으니까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 했고 사쓰마 번에 바칠 세금도 또 따로 필요했다.

 

오키나와는 옛날부터 사탕수수를 재배했었는데 사쓰마는 이를 헐값에 사들이는 식으로 수탈해나간다. 

(일본의 음식이 달달 해진건 이때부터라고 한다.) 

 

일부 지역에선 모든 세금을 설탕으로 요구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논들은 사탕수수밭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부족해진 식량은 일본 본토에서 구입해야 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류큐 왕국의 재정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이 말이다.

 

그래서 류큐 왕국은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백성들에게 인두세를 매겨버리게 되는데..

이 말은 또 무슨 말인고 하니 이런 쓰벌 족같은 상황이 있나

사쓰마에게 세금도 내야 하는 마당에 사람 수만큼 세금을 더 내야 되게 된 것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생활이 이런 식으로 갈수록 힘들어진 오키나와 백성들은 스스로 인구 조절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임산부를 불러 모아서 바위 아래로 떨어지라고 하거나(쿠부라바리 전설)

 

갑자기 비상소집해서 늦게 오는 사람들을 참살해버리기도 한다(토운구다 전설)

무섭다..ㄷㄷ

 

 

그 후 일본의 류큐왕국 처분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청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새롭게 시작한 메이지 정부의 위신을 위한 큰 성과가 하나 필요했던지라 이때까지 반 속국 상태로 두었던

류큐를 이대로 두는 것보다 일본에 확실히 편입 시키려 하게 된다. 그래서 군대를 이끌고 또다시 류큐에

개입하게 되는 일본 

 

이로써 명목상 이로나마 존속하던 오키나와 류큐 왕국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멸망해 버리고 이때부터

류큐는 일본의 일개 현이 된다. 오키나와 현 말이다.

 

 

4. 오키나와 근현대사

 

오키나와의 일본화(1879~ )

 

일본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오키나와식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천황 숭배, 일장기 게양, 기미가요 제창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게 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황민화 교육을 시킨 것.. 흠 왠지 비슷한 어떤 나라가

떠오르지 않는가 여러분?

 

심지어 일본은 오키나와 방언 오키나와 사투리도 금지 시켰다고 한다. 이걸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방언 벌칙 패찰 이란 것도 이때 있었는데 학교에서 누군가 방언으로 말하면

목에 이걸 걸게 했다고 한다. 걸었던 횟수만큼 그대로 성적에 반영시키거나 수치심을 주었다고 한다.

들부들... 여기서 한 가지 웃긴 것은 일본 본토의 어느 지역에서도 방언 금지는 일본이 시키지 않았다는 것

오직 오키나와만 방언을 금지 시켰다는 것

 

 

오키나와 전투의 아픔

 

 

 

일본은 지 분수도 모르고 진주만 공습을 통해 미국에게 덤볐고 그 후로 벌어진 태평양 전쟁에서 국력의 차이로 인해 점점 밀리게 된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지역이다.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오키나와를

요새화 시키고 항전을 벌여나가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본 군인들은 이 당시 순진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미군에게 포로가 되면 여자는 능욕 당하고 남자들은

사지가 찢겨 죽임을 당한다. 군관민 공생공사다. 나라를 위해 죽어라라는 내용의 세뇌 교육 가스라이팅을 시킨 것

 

그 결과 치욕 당하지 않기 위해 이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부모, 형제, 자식, 친척, 지인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집단 자결이 대량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치비치리 동굴에 숨어있던 82명의 주민이 집단 자결

의해 희생된 사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시간을 벌기 위해 수많은 죄 없는 주민들을 희생시켰다. 일본군이 주민들의 식량이나 물을

강탈하거나 일본군의 위협 때문에 전장으로 탄약과 식량, 물 등을 나르다가 포탄에 맞아 죽은 사람들도 많았었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미군이 뿌린 항복 권유 삐라를 주워서 보거나 다른 주민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던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사례도 이때 당시 오키나와에서 있었다고 한다. 이 파렴치한 일본군들이 피난 장소로 들어온 위치를 발각 당하지 않기

위해서 유아나 어린이 들을 내쫓거나 죽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일본군들에게 결론적으로 보면 통수 진짜 정말 제대로 맞은 셈

 

 

미군정의 지배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고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을 완전 정복한

미국에게 오키나와를 내주게 된다.

 

 

미군정하 오키나와 주민들이 겪은 불편함들

 

미국은 오키나와에 많은 미군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당시의 국제 정세를 생각해 보면

구 소련과 미국의 냉전 대립이 치열하던 시기였으니까 오키나와에 군 기지들을 건설해두면 아시아의 정세를 가늠하기

쉬워질 테니까 이건 미국 입장에서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하여튼 미군정은 오키나와의 땅들을

콜라 한 병 값도 안되는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한다.

 

현재 

오키나와에 일본 주둔 주일 미군 시설의 73.9% 가 몰려 있다.

 

이로 인해서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미군 기지에서 발생하는 소음 피해, 훈련 도중 발생하는 사고

미군 기지로 인한 환경 문제 등도 있었지만 그중 범죄는 가장 큰 이슈거리였었다고 한다.

 

1949년 9개월 된 아기 살해

1955년 6살 여아 살해

1995년 9월 미군 해병대원이 초등학생 소녀 폭행

2001년 6월 미군 공군 병사가 여성 성폭행

2003년 5월 미군 해병대원이 여성을 성폭행 치상

2008년 2월 여중생 강간 사건

2008년 필리핀 여성 폭행 치상 사건

 

이 외에도 많은 사건이 있다. 성폭행으로 인해 출산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주일 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몰려 있으니 어찌 보면 저런 사고가 가끔가다 한두 번씩 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인 듯하다.

 

미국은 오키나와 주민들로 하여금 독립을 택함으로써 미군 철수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 스스로가 독립을 택하지 않았다. 단 0.1%만이 독립을 지지했다.

 

 

5. 끝을 맺으며

 

우치난츄? 야마톤츄? 우치난츄는 오키나와인을 뜻하는 오키나와 방언이고

야마톤츄는 일본 본토인을 뜻하는 오키나와 방언이라고 한다.

 

사쓰마에 침략 당할 때에는 일본에게 강제적으로 동화 그 후 메이지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적인 일본화 작업 진행

2차 세계 대전 때는 전쟁 피해 지역으로 피해 제대로 받음 일본군에게 집단 자결 강요까지 받음

그후 미군정의 지배 지금도 중국과 일본 가운데 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촉 즉발의 상황 감내 중

 

류큐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세상천지 오키나와인들 만큼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 고달픈 역사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 오키나와 사람들

과연 오키나와는 일본에 있는 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본에 있는 게 맞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자신을 오키나와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본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오키나와 인이면서 일본인이라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대답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0부터 10까지 나타낸다면 얼마라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대답

 

이 질문들이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여러분들은 그 지역의 사람입니까? 대한민국 사람입니까? 그 지역 사람이면서 대한민국 사람입니까?

여러분들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0부터 10까지 나타낸다면 얼마라고 생각합니까?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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