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 / 中央廳)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of Korea / The post of Governor-General of Korea)
일제 무단 식민 통치시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한국에 설치한 식민지 통치 기관(총독부)
1910년에 설치되어 1945년 해체되었다. 참고로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은 문민정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기념식을 맞아 철거하는 행사를 치른 후 1996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조선 총독 아래 5부 9국의 체제를 갖추고 총독은 일본군 육군이나 해군 대장 출신중에서 임명되며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정무를 총괄, 내각 총리대신을 경유하여 덴노에게 상주 재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조선 내의 육군과 해군의 통수권자이자 위임에 따라서 총독부령 및 명령 그에 추가하는 벌칙을 내릴 수도 있었다.
내각 총리 대신 다음의 사실상 제2인자에 해당하던 직위였다고 볼수 있다. 초창기 총독부 청사는 남산에 있던 구 통감부
건물을 이어받아 사용했으며 한국인들이 흔히 조선 총독부로 알고 있는 건물은 1926년에 지어졌다.
일제의 조선 총독부 건설
일제가 서울의 경복궁 입구에 완공시킨 조선 총독부 건물(1926년)
성조기를 꽂은 조선 총독부 건물 앞으로 행진하는 미 제7 보병 사단 군악대와 하지 중장(1945년)
1945년 8월 15일 팔일오 해방 광복 한달후 미군에게 접수된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 앞의 풍경(1945년 9월)
전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 행사(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조선 총독부 건물은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새롭게 바뀌게
된다. 참고로 사진속 세사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과
더글라스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주한 미군 사령관 존 하지 중장 이라고 한다.
소련과 중공의 사주를 받고 북한 김일성이가 기습적으로 일으킨 불법 남침
6.25 전쟁 당시 서울 함락후 중앙청에 내걸린 북한군의 인공기(1950년)
서울 탈환후 불탄 중앙청 앞에 포진시킨 7.62mm 30 기관총좌의 국군과 미군
서울 수복후 태극기를 게양하는 해병대원(1950년 9월 28일)
민족 반역자 김일성의 6.25 불법 남침으로 검게 그을리고 파괴된 중앙청의 모습
중앙청(옛 조선 총독부) 앞에 포진된 곡사포
중앙청이 보이는 파괴된 건물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뒤지고 있는 모녀(1950년 11월)
1.4 후퇴 1달전의 서울 중앙청(1950년 12월)
6.25 사변 한국 전쟁 당시 서울 재수복 이후의 모습(1951년 10월 초)
1953년 8월 15일 중앙청(옛 조선 총독부) 광장
광화문이 옛자리로 옮겨지기 전의 모습(1966년 10월 29일)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모습(1988년 9월)
84년만에 다시 복원된 광화문(1993년 9월)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1395년) 개국과 함께 지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200년 후 임진왜란(1592년) 이
일어나 경복궁 전체가 소실 됐을때 함께 방치되다가 고종 2년(1865년) 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때
광화문도 다시 중건되었다.
1926년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내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경복궁내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6.25 한국 전쟁으로 광화문 상부가 다시 불에 타 사라졌다. 1968년에 다시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목조
건물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건립했다. 그 후 2006년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작업으로 2010년 8월 15일
복원이 완료 됐다.
중건 당시에 만들어진 해태상은 일제 때 경복궁 안에 방치됐다가 복원된 광화문 앞에 다시 세워졌다. 하지만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80m 앞이었다고 한다. 허나 그 곳이 지금은 자동차 도로 지점이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 위치에 최종 복원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해태상은 광화문 지킴이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물이었다.
해방 이후 약 50년 만에야 비로소 대한민국 서울 중심부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일제의 잔재
조선 총독부 건물(이때 당시는 국립 중앙 박물관) 을 철거하는 모습(1995년 8월)
힘이 없어서 겪었던 지난 20세기초 일제 강점기 35년 한반도 대한민국 치욕의 역사
앞으로 대대손손 이 한반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갈 후손들은 부디 이런 비극과 차별 멸시를
겪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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